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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봉(2002-11-17 20:56:29, Hit : 4441, Vote :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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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속으로 떠난 우천 허만수님....

[1974년 세석산장에서 우천 허만수님....]



지리산 사람이 있었다. 우천 허만수님 ....

30 여년을 지리산과 함께 살아 오면서 지리산을 집삼아
살다간 이시대의 奇人으로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가족은 있었지만 속세를 떠난 구도자의 수행길처럼
그는 늘 지리산 토굴과 움막에서 살다시피 했다.

축지법을 쓴다거나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는 등의
숱한 소문이 항상 그의 주변에 따랐다.
그리고 76년 6월 어느날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긴채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지리산에는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리고 수많은 지리산 사람들은 숱한 지리산과의
대화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우리에게 전해진 숱한 지리산과의 대화은 또한
지리산과 우리 한민족의 관계를 깊이
조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상향의 목마름을 희구하던 수많은 시인묵객은 물론
수도자,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선조들은
지리산을 못내 사랑하며 지리산과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간의 수많은 지리산 사람 가운데 최근래에
지리산과 함께 살다 간 인물,
우천 허만수 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의미 깊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지리산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도
자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자연에 순응할 줄 알았고
만고불변의 자연 원리를 좇아 살면서 자연과
하나된 그의 삶이 고귀했고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가 너무도 강렬 했음이라 여겨 본다.


[세석에 있었던 우천 허만수님의 초막...1961년....]



하늘을 집 삼아 살았다는 뜻의 우천 선생은
1916년 진주시 옥봉에서 태어나 10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교시절 산을 알았고 그 곳에서
경도전문대 철학과를 다니며 아름답고 순수한 삶을
살고자 모임을 만들어 일본의 유명산을 찾아
헤매며 인생의 의미를 깨우쳤다 한다.

일제에 강제 징집 당했다가 광복후 진주로
돌아 와서는 부인 전경림여사와 결혼해
세딸(청자, 덕임, 영희)를 두고 서점을 운영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듯했으나 지리산에 오른 뒤
스스로 "우천(宇天)"임을 자청하고
산으로 향하는 열정을 불태웠다.

세석 고원에서의 움막 생활을 시작으로
가끔씩 진주를 걸어서 들러는 것 외에는 오직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사람으로서의 일생을 걷게 된다.

산에 살면서 그냥 지내기 보다는 당시에
산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등산로를 만들기로
하고 험난한 곳에는 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놓아
오르내리기 편하게 했으며 산을 멋모르고 찾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조난객들을 구하는 일까지
선생의 손발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생기면서 지리산 등산로 주변의
안전시설이 정비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등산로 주변의
편의시설 설치는 우천선생의 몫이었던 셈이다.

지리산에 살면서 가장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려 했던 우천은 지리산 동물을 잡아가는 것을
보면 돈을 주고 사서라도 산에 고이 묻어 주고
지리산의 아름다운 꽃씨를 모았다가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심어
가꿀것을 권하기도 했다 한다.
지리산을 자신의 신체와 하나로 여기고
있었음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은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지리산이
열리면서 등반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게 된 이후 부터는
자연의 훼손이 눈에 띄게 늘어가 이를 제대로
수습 하는데 한계를 느꼈음인지 인생과 사회에 대한
좌절감을 맛보고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칠선계곡으로
들어가 묻힐 것이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한다.

그 후 잘아는 산악인들을 만나면 "지리산으로 영원히
들어갈 것이니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 무렵이 76년 6월, 그후 진주의 산악인들은
고인의 높은 지리산 사랑을 기려 중산리 등산로 입구에
추모비를 세워 매년 철쭉제 행사 때마다
이 곳에서 제를 올린다.


--월간 산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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